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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스캔]‘똥냄새’나는 은행열매가 사랑의 징표? 작성일 2023-10-09 조회 7641 번호 78

“앗 발밑 조심해.”


가을철이 되면 언제나 찾아오는 강렬한 악취의 주범 은행나무 열매. 길을 걷다 실수로 은행열매를 밟기라도 한다면 온종일 ‘똥(?)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악취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하는데요.


◆‘똥 냄새’는 호신용 스프레이?!

 

우리가 열매라고 부르는 은행은 식물형태학적으로는 종자, 즉 씨입니다. 9~10월 무렵에 열리는 황색의 종자는 크게 바깥쪽 육질층(육질외종피, sarcotesta)과 딱딱한 중간 껍질(후벽내종피, sclerotesta), 그리고 그 안쪽의 얇은 껍질(내종피, endotesta)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악취의 주범은 바로 육질층입니다. 왜 이 곳에서 고약한 냄새가 날까요?


비오블과 은행산이라는 특성 물질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는 옻나무의 옻에도 있는 독성 성분입니다. 자칫 피부염 등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죠. 즉 고약한 냄새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성성분은 동물이나 곤충으로부터 씨앗을 지키기 위한 은행나무의 생존 방식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호신용 스프레이’라는 거죠. 이 때문에 은행열매를 먹는 동물은 손으로 육질층을 제거할 수 있는 인간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88올림픽 이후 대표적인 가로수로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도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나무입니다. 산림청 산림임업통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 식재된 가로수 1982만4183그루 가운데 은행나무는 206만5553그루. 무려 10.4%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많은 가로수는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였습니다. 공기 정화 능력이 우수하며 성장 속도가 빨라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봄철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고 가지치기를 자주 해야 했으며 벌레가 너무 많이 꼬인다는 단점이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플라타너스 대신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은행나무는 플라타너스와 달리 병충해가 없고 공해를 견디는 능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뿌리가 인도나 도로를 뚫고 나오는 일이 없고 노란빛으로 물들기 때문에 미관이 아름답다는 장점이 있죠.


게다가 ‘열매’를 술안주나 약재 등으로 먹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고약한 냄새 탓에 민원이 가장 많은 가로수가 은행나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다는데요. ‘열매’는 숫나무가 아닌 암나무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숫나무만 심으면 고약한 냄새 걱정 없이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과거에는 은행나무 암수 구별이 불가능했습니다. 암수를 구별하려면 꽃과 종자가 열리는지를 봐야 하는데, 은행나무가 생식을 시작하기까지는 무려 15∼20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검사법이 등장했습니다. 묘목 단계에서 숫나무만 골라 심는 것이 가능해진 거죠. 그래서 서울에서 가로수가 가장 많은 강남구청은 내년 상반기까지 200그루의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은행나무가 가장 많은 송파구청은 2020년에 수나무 교체 작업을 3년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흔한 은행나무가 국제 멸종위기종?

 

놀라운 사실은 가로수로도 쓰이는 은행나무가 사실 흔한 식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위기(EN)' 등급으로 지정된 국제 멸종위기종입니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립니다. 2억8000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에 출현해 중생대 쥐라기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때까지 수십종이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개동물이 사라지면서 대부분 멸종했고 한종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일까요? 은행나무에 관련된 애뜻한 사랑 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의 ‘발런타인 데이’였던 경칩날 남녀가 은행을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가 농서 ‘사시찬요초’ 등에 나옵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암수가 마주 보며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를 사랑의 결실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기 때문인데요. 가을부터 준비한 소중한 은행 열매를 3월 꺼내어 연인에게 선물했다는 거죠. 그 어떤 초콜릿보다도 달달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애틋한 사랑이 담긴 은행을 굳이 유전자 검사까지 해서 갈라놓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조선시대 연인들처럼 은행을 고이 모셔 사랑의 징표로 선물하는 문화를 되살린다면 악취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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