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얼까요.
내가 산 주식이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 로또 1등에 당첨됐는데 1등이 나 혼자뿐이라 당첨금을 독식하는 것?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이런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바로 살빼기.
주식이나 돈은 매우 높은 확률로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한때 국내 고시 3관왕 출신 변호사도 결국 주식투자에 실패했던 걸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업 분석을 치열하게 한다고 해서 투자에 성공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814만분의 1 확률을 지닌 로또야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살빼기 즉 다이어트는 개인의 정성과 연구와 분석과 꾸준함이 혼연일체가 돼야 달성할 수 있는 마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는데 살이 빠지지 않거나 살을 뺐지만 곧바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는 요요현상을 겪는 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탓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당신이 살찌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라고 위로를 해준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송도책방 이번 시간에는 ‘지방 스위치’ ‘생존 스위치’라는 개념을 세상에 알린 의학박사 리처드 존슨의 최신작 ‘자연은 우리가 살찌기를 바란다’(출판사 시프)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날씬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매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기 때문에 인류를 포함한 자연은 비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로 우리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원래 ‘뚱뚱한 게 디폴트’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할까요? 혹시 본인도 뚱뚱해서 그런 걸까요?
남극의 겨울에 황제펭귄은 알을 품습니다. 알을 품기 한두 달 전부터 체중이 늘기 시작해 초겨울 무렵 몸집이 평소의 두 배 정도로 커집니다. 암컷은 알을 한 개 낳고 먹이를 구하러 다시 바다로 향합니다. 수컷은 그동안 참고 견딥니다.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진 환경에서 알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몸통 아래쪽과 발 사이에 알을 넣고 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나 가만히 앉아서 알을 지키는 동안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미리 축적해둔 많은 양의 지방이 영하권의 날씨에서 단열효과를 내고 수컷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열량을 제공하죠.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도 중요한 비행을 앞두고 미리 많이 먹어둡니다. 해안가에 서식하는 큰뒷부리도요는 긴 부리로 모래나 진흙을 헤집어 곤충과 갑각류를 잡아먹고 대이동에 앞서 늦겨울에 간과 체내에 지방을 축적합니다. 8일간 쉬지 않고 날아서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약 1만1265km를 이동하기도 합니다.
동면을 하는 동물도 가을에 먹이 섭취량을 늘리죠. 이들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화학 반응인 대사를 둔화시킵니다. 더 많이 먹는데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 섭취한 먹이가 지방으로 더 많이 전환됩니다. 동면에 들어가면 영하에 근접할 정도로 체온을 떨어뜨려서 더욱 심박수를 낮추고 대사를 둔화시키기 때문에 이런 동물들은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야생에서 살아간다면 지방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떨까요. 농사가 시작된 신석기혁명 이전 우리 선조들은 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먹고 들에 있는 곡물을 집어 먹고 만만한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습니다. 즉 수렵채집생활을 했기 때문에 언제 먹을 게 나타날지 알 수 없고 겨울이 되면 먹이를 얻을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는 의미죠. 따라서 인류 역시 겨울을 맞는 동물처럼, 알을 품어야 하는 펭귄처럼 일단 지방을 저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맛있는 음식를 보면 ‘일단 먹고 보자’라고 생각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뜻이죠.
다만 이전과 달리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니 바로 현대인의 환경입니다. 수렵채집 시절과 달리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한 달 뒤 돈을 내도되는 신용카드를 써서 지금 바로 음식을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말이죠. 한 마디로 야생에서는 인풋과 아웃풋이 결국 조화를 이루지만 현대인의 생활에서는 인풋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몸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많이 먹고 덜 움직이면 살찐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죠. 하지만 저자는 이런 원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냅니다. ‘비만인 사람들은 그럼 왜 더 많이 먹나? 그들은 왜 계속 허기를 느끼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냅니다. 더불어 빙하기에는 비만도가 높은 신체 조각상이 더 많이 만들어졌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냅니다.
우리가 식사 후 포만감을 느끼는 이유는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뇌의 시상하부에 ‘그만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렙틴은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며 인슐린 수치와 BMI에 따라 수치가 달라집니다. 과체중인 사람들은 렙틴이 보내는 신호에 대한 반응이 저조한데 이를 렙틴 저항성이라고 합니다. 즉 동면 전 동물들이 다량의 음식을 먹는 것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죠. 마치 동물들이 생존 스위치를 켠 것처럼 말이죠.
야생동물들의 생존 스위치를 켜는 건 음식이나 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 급격한 온도 하락 등입니다. 그런데 어떤 동물들의 경우 칼로리 성분을 넘어서는 독특한 속성을 지닌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 스위치가 켜집니다. 이 특별한 음식은 바로 ‘프럭토스’입니다. 탄수화물의 일종인 프럭토스는 흔히 과당이라고 불리는데 과일과 꿀에 든 주요 당류이자 이런 음식에서 단맛이 나는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프럭토스가 도대체 어떤 작용을 하길래 우리 인류를 비만으로 몰고 간 걸까요? 2부 순서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