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5일 입사한 이 과장. 입사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경계가 강화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웃음이 바로 무장을 해제하게 하네요. 잠깐이나마 미안했습니다. 이 과장님~
이 과장은 제형제조팀의 최종 결과물 담당입니다. 팀원들이 연구 개발을 해서 레시피를 만드는 작업에 주력했다면 그는 레시피를 참고해 완성품을 만들어냅니다. 바이오애프디엔씨에는 화장품을 만드는 기계들이 있는데 이를 가마라고 부르네요.
“품질관리, 제형제조, 식약처나 협회 관련한 대관업무, 과장광고 체크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가마에서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합니다. 크림 같은 경우 물과 오일을 혼합해서 유화과정을 거치고 이후에 중화 작업을 하는데 각 단계에서 하는 업무가 다 다릅니다. 가열, 가온, 점증(점도를 높이는 일) 등이 그렇고요. 크림마다 이러한 작업들이 또 달라집니다. 세럼이나 토너는 말 할 것도 없고요.”
이쯤되면 TV에서 봤던 ‘달인’이나 ‘장인’이 생각나죠? 그럴 만도 한 게 가마에 들어가는 각종 원료의 가짓수가 50개를 넘는다고 하네요. 특히 필요한 재료가 g단위로 들어가야 하기에 1g, 2g 차이로 결과물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측정 작업에 저울 사용하지만 저울을 쓰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조심하고 주의하고 신경을 곧추세워야 합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가마는 메인 역할을 하는, 재료를 섞어주는 호모 가마를 필두로 오일을 녹이는 유상 가마, 물이 첨가되는 수상가마가 있다는 군요. 예전 시골에서는 밥이나 국을 가마솥에서 만들었는데 화장품도 가마에서 제작된다고 하니 더 재미있네요. 문제는 밥이나 국을 만드는 가마와 달리 작업 자체가 까다롭고 힘이 든다는 점입니다.
“정제수의 양, 가마의 온도, 원재료의 점도와 경도, 재료 중에서도 특히나 민감한 구연산의 ph농도 등 기준이 저마다 존재합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이를 맞춰야 하니까 쉽지 않은 일이죠. 가끔은 기분을 오버하거나 부족한 경우가 생기는 데 원료를 더 하고 줄이면서 적정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이런 노하우가 늘어나고 그래야 고객사에서 만족합니다.”
이 과장은 파스를 자주 붙입니다. 가마에 원재료를 넣기 전에 재료를 이동시켜 하는데 보통 20k~30kg이라고 합니다. 마트에서 20kg짜리 쌀을 카트에 올릴 때도 꽤 힘든데 말이죠. 문제는 이렇게 무거운 재료를 다 집어넣는 게 아니라 이 중에서 200g 정도만 덜어내서 쓴다는 점입니다. 기껏 고생해서 무거운 짐을 옮겪더니 정작 필요한 건 미량입니다. 살짝 허무할 것 같기도 하죠?
이에 대해 이 과장은 “허리, 어깨, 무릎이 자주 아프다. 가벼운 원료들은 날아가기도 하고 암모니아 계열 재료들은 톡 쏘는 느낌을 준다”며 “그럼에도 가마의 투명 창을 통해 재료들이 섞이면서 결과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참 좋다”고 말합니다.
일이 쉽지 않지만 과정과 결과에서 만족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천직이고 적성이고 삶의 의미 아닐까요? 이 과장도 사람인지라 이 어려운 일이 한 번에 끝나면 아주 기뻐합니다. 여러 가지 컨디션과 재료들을 적절히 조율해야 하는 흡사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물과 기름은 상극인데 두 존재를 어떻게든 하나로 만들어낸다”고 자부합니다.
화장품 제조 전문가이면서 남성이기 때문에 그에게도 남성 화장품 그리고 남자들이 화장품을 바른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피지가 많아서 즉 기름기가 많아서 화장품을 바르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그러면 건조해집니다. 보습이 필요해요. 빨리 노안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이 과장은 최근 큰 고민을 안고 삽니다. 인천 주안에 새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이 빠지지 않고 있거든요. 작금의 부동산 가격 폭락과 함께 전세금도 덩달아 내려가고 있는 탓입니다. 집주인은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돈을 줄 수 있다’며 버티고 있고요. 이제 계약 만료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 클 수박에 없죠.
이 과장은 “혹시나 모를 전세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전세보증보험에 꼭 가입하시고 추후에 임차권등기도 설정하시길 권한다”고 조언합니다. 슬쩍 물어보니 본인이 전세 계약을 할 때는 지금처럼 금리가 높지 않아서 안주한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 과장의 조언을 꼭 기억해주세요.
고민만 있다면 사는 재미가 없겠죠. 고민 만큼이나 새 집에서 살아갈 기대도 큽니다. 그래서 요즘 이 과장은 ‘새집 점검’ ‘아파트 조경과 시설’ ‘새집에 어울리는 가전제품’ 등을 다루는 유튜브 시청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OLED, QLED TV 중 어느 것이 좋은지, 로봇청소기는 물걸레가 되는 게 좋은지 그리고 자동으로 먼지를 비우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지 등을 꼼꼼히 비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네 번째 회사인 바이오애프디엔씨. 그는 이곳에서 처음 연월차를 자유롭게 쓰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통틀어 한 두 번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이 과장은 “우리 회사는 직원 휴가에 대해 눈치를 주지 않는다. 내가 휴가가면 제조일정을 미룬다”며 회사 자랑을 합니다. 더불어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어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에서 저금리 자금 대출을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하긴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부담 없이 주택매매자금, 전세자금을 빌릴 수 있는 것만큼 좋은 복지도 없을 겁니다. 나랏님도 못하는, 국민은행, 신한은행도 못하는 일을 바이오애프디엔씨 경영진이 해낸다면 직원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겠죠?